{책}빨간 공책

얇고 내용도 빈약하고 텍스트는 모조리 손글씨 서체로 빨간줄이 노트처럼 쭉쭉 그어진 종이위에 설기설기 짜여져서 돈주고 사기엔 아깝게 생겼다. 하지만 '빨간 공책'이라는 이름의 책을 내가 안 살 도리가 없다. 책을 뽑아들고 살까 망설이다 계산대로 가서 돈을 지불하고 집으로 데려온 것은 나지만, 왠지 누군가의 명령을 따른 기분이 들었는데 호기심이 일거나 감정이 동했다기보다 그냥 자동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내 옆에 놓인 책을 보니 난 낚싯밥을 쳐다보는 물고기같다. 다른사람들은 나의 '빨간' 같은 어떤 자기최면어휘목록을 가졌을까?

빨간 노트라는 블로그를 가진 사람이 빨간 공책이란 책을 사서 읽는다는 것은 순리라며 난 저 책의 내용엔 별 관심 없이 책과 나의 관계에 대한 우연에 흥이 났던 것같다. 하지만 읽어 보니 책의 내용 자체가 우연성에 관한 것이었다.

책의 내용은 폴 오스터 자신에게 또는 주위에 실제로 일어났던 재미있는 우연과 관계된 일화들의 모음인데 옮긴이 김석희씨는 이를 오스터의 비망록이라고 불렀다. 비망록은 '잊지 않으려고 적어 두는 책자'라는데 그렇다면 빨간 노트도 빨간 공책도 비망록에 속하는 것이겠다. 이 곳은 내가 빨간색에 집착하여 빨간 노트인 것인데 이 책의 이름은 왜 '빨간' 공책일까? 오스터의 다른 소설과 관련이 있다는것 같기도 하다.

사전적 정의는 '우연'이란 인과관계의 필연적 계열에 다른 인과 계열의 사건이 뛰어드는 일이라고 한다. 오스터의 책 중 유일하게 읽어본 '달의 궁전' 도 읽을수록 인과관계에 인과관계가 맞물려진 괘종시계 같았다. 사실 긴 글로 읽었을때 우연의 체계가 별 감흥을 주지 않았는데 '빨간 공책'에선 '우연'이란 것이 작품을 이루기 전 무가공 재료로 주어진것 처럼 더 싱싱했다. 우연이란 것이 책에서만 일어나는 가공의 초자연 현상이 아닌, 우리가 일상에서 놓쳐버리는 재미있는 사건과 사물의 관계들이란 것이 실화에 바탕을 두어 와닿았다.

각 글은 아주 재미있지도 않고 인과관계로 이르는 수순도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마음에 드는 점은 이 책이 현실세계와 공상세계의 중간에서 현실에 위치하는 사람이 공상의 세계를 거쳐오면서 현실세계를 조절할수 있다는 암시를 준다는 것이다. 깨어 있을때 좀 더 세세하게, 좀 더 재미있게, 상관없는 것들을 연관지어 보면 재미있는 결과들을 발생시킬수 있다는, 말하자면 우연은 발견을 하면 필연이 된다는 믿음이 생긴다. 에세이들은 Arcimboldo 의 야채로 이룬 얼굴이 야채들의 모임->사람의 얼굴 이라는 단순한 공식처럼 우연의 공식화 라는 체계를 반복적으로 학습시켜서 읽자마자 현실에 적용시켜 보게된다.

그리고 소설가가 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는데, 책에 따르면 주위 사람들이 작가에게 소재와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싶은 요량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기면 작가에게 모조리 털어놓는다. 모든 이야기를 재미있게 여기고 다른 사람과 재미를 나누는 법을 배우고 싶다. 책을 읽고 나서 주위에 재미있는 우연과 인과관계들이 없을까 번뜩이며 재료를 모아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보고 싶은 의지가 막 생긴다. 매체가 달라도 다른 사람의 창작시스템을 들여다 보는건 많은 영감을 준다. 빨간 공책과 빨간 노트라니, 우연이 아니다.


pooroni @ 05/07/17 15:24 | Permalink | →etc. - books | Trackbacks | (1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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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크크 이책 당연히 예전부터 가지고 있으실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소라Բ 05/07/17 23:31 ۼ.

흐흐 그러게요~ 늦게야 발견!
pooroniԲ 05/07/18 11:58 ۼ.

이상하게 내게는 폴오스터처럼 과장되서 평가받는 사람이 없는거같을까
나 스무살때 korea에 엄청 재즈바람이 불었는데
거품처럼 사그라들었지
재즈를 사랑한 나같은 사람에겐 너무 허무하게도 말이야
폴오스터를 몇권이고 읽어도 그 재즈거품이 생각나
내 조직이 결코 이해할수 없는 구조가 있는 모양이야
가끔 사람들이 열광하는걸 도통 이해할수 없어서
미친년이 된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어
mjԲ 05/07/20 21:11 ۼ.

사람들에게 인기있는건 그것이 가진 코드에 뭔가 통속적인 요소가 있어서자나, 그게 시류에 어떻게 딱 맞아떨어지는가는 맛있는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의 배합같은거겠지머. 그런게 싫었는데 다른면으론 통속적인 것의 인간미가 부러워. 솔직히 오스터에게 안좋은 감정이 많아서 그런거 배재하고 책 읽으려고 했어, 단지 제목때문에. 그러고나니 좋은점들이 보이지뭐야. 책 읽으면서 배운건 그런 마음가짐을 일상에도 적용해볼것! 이었쥐 ㅎㅎ. 사람들이 뭘하건 알맞은 시기에 읽었을때 다빈치코드같은거라도 영감을 줄수도 있겠지만 알맞은 타이밍이라면... 언니는 대부분의 다른이들과는 다른 시간을 여행하고 있었던게 분명해 ㅋㅋ
pooroniԲ 05/07/21 04:01 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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