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열린책들.
아마존에 사는 주인공 할아버지는 가끔씩 부락을 방문하는 치과의사에게 부탁해서 연애소설을 얻어 읽는다. 할아버지랑 치과의사가 보라색 벨벳으로 의치를 감싸 보관하는 대목이 가장 아리송했다.

자연과 자연을 파괴하는 서구문명의 중간에 위치한 할아버지는 원주민들과 살다 쫓겨나고 자연에 귀속되지 못해 공허감에 시달리는데 그는 이런 허한 마음을 문명의 글자로 이루어진 연애소설을 읽으며 달랜다. 자연과 문명의 대립구도같은 것보단 할아버지가 연애소설을 읽는 방법 묘사가 제일 재미있었다. 할아버지는 글을 낭독하고 입안에 음미하면서 아주 천천히 읽는다.

제일 재미있던 대목 p45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포로아뇨는 글을 읽을 줄은 알아도 쓸 줄은 몰랐다. 그가 쓸 줄 아는 글자는 그의 이름이 전부였다. 하지만 선거철에 선거인 명부 같은 공문서에 기입하는 서명 외에 사용할 기회가 없다 보니, 글을 쓴다라기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글 쓰는 방법조차 거의 잊고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돋보기가 틀니 다음으로 아끼는 물건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p144
<폴은 모험에 따라 나선 친구이자 공모자인 사공이 다른 곳을 보는 척하는 동안 그녀에게 뜨겁게 키스했다. 그사이 부드러운 방석이 깔린 곤돌라는 베네치아의 수로를 따라 유유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새로운 음성이 끼어든 것은 그 순간이었다.
에이 영감님도. 조금 더 천천히 읽을 수 없어요?
노인은 고개를 들었다. 이미 잠자리에 든 두 사람까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방금 읽은 글 중에서 알아듣지 못한 말이 있었거든요.
천천히 읽으라던 동료가 덧붙였다.
영감님은 무슨 말인지 다 알고 있나요?
이번에는 또 다른 동료가 물었다.
그때서야 노인은 그들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낱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인은 그들과 함께 그 뜻을 이해하고자 천천히 이야기를 이끌기 시작했다.
먼저 곤돌라와 곤돌라를 움직이는 사공 그리고 뜨거운 키스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거의 두 시간에 걸친 대화가 있고 난 뒤에야 대충이나마 그 뜻이 정리되었다. 물론 이야기 도중에 간간이 끼어든 동료들의 의견이 적잖은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소설 속에 나오는 도시와 그 도시의 사람들이 움직일 때 배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부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담배를 태우거나 술을 마셔 가며 나름대로 열을 올렸다.
생각보다 비가 많지 않을 수도 있어.
아니면 강둑이 터졌거나.
어쨌든 우리보다는 훨씬 더 물에 젖어 살 거야.
다들 생각해 봐. 술이나 한잔 걸치다가 오줌을 싸려고 밖으로 나갔어. 그러면 어떻게 되지? 이웃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고개를 쳐들고서 그 모습을 다 볼 게 아니냐고.
읍장이 그들을 향해 거대한 체구를 돌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는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알아 두었으면 해서 한마디만 하지.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 있는 도시인데, 그 도시는 늪지 위에 건설되었어. 이제 알겠나?
그래요?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곳에선 집들이 뗏목처럼 떠다니겠군요.
누군가가 그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배가 왜 필요하지? 큰 배처럼 집을 타고 다니면 되잖아. 안 그래?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러니까 다들 멍청이라고 할 수 밖에!
뚱보는 답답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책망한 뒤에 덧붙였다.
집은 움직이지 않아. 고정되었단 말야. 그곳에는 왕궁도 있고, 성당도 있고, 성도 있고, 다리도 있고,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도 있어. 그리고 그 건물들은 다 돌에 시멘트를 발라 만들어졌지.
그걸 어떻게? 그곳에 가봤다는 말이오?
노인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가보진 않았지. 하지만 나는 배웠어. 그래서 읍장도 될 수 있었던 거야.
뚱보가 애써 거드름을 피우며 그 말을 받았다.
그러나 뚱보의 설명은 그들의 생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의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읍장 각하, 제 생각에 그곳에는 물에 뜨는 돌이 있나 보군요. 물에 뜨는 아주 가벼운 돌 말입니다. 하지만 그 돌이 아무리 가볍더라도 그것으로 집을 지으면 물에 가라앉지 않을까요? 읍장 각하, 그 사람들은 집 밑에 커다란 판자를 댄 게 틀림없어요.


pooroni @ 05/07/19 03:55 | Permalink | →etc. - books | Trackbacks | (9)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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