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통역사
미국에서 2003년에 나왔는데 한국엔 번역본으로 나온 지 3일밖에 안됐다. 우측의 여자 그림은 국제갤러리에서 올 겨울에 전시예정이라는 수키 킴의 언니가 그린 것이라 하고 표지 디자인은 미국 출판사에서 한 것 그대로이다. 표지 디자인이나 색감이 묘하게 한국적이지가 않은데 사용된 이미지나 'KIM'이란 글자와 묘하게 병치되는 조화가 미국적이랄까. 여자애가 무채색인건 책속의 주인공과 잘 어울린다. 다닥다닥 표지들이 진열되어있는 시티문고 신간들 사이에서 시력이 안 좋은 나의 눈에도 잘 들어오던데.
주인공인 수지는 어릴 때 한국에서 이민 온 1.5세 미국인이다. 복잡한 내막이 있는데 하여튼 컬럼비아를 다니다 중퇴하고, 부모가 총에 맞아 죽고, 맨하탄 빌리지 근처 아파트에서 유령처럼 살면서 통역일을 시작한다. 통역이란게 중립 적인 것 같지만 시소의 가운데에 올라탄 것과도 같은 위태로운 힘겨루기같기도 하다.
통역일을 하다 맞닥뜨린 실마리가 부모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품게 하면서 과거를 파헤치게 되고 그래서 없는 듯 숨겨놓았던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을 할 수 없이 더듬는다. 소설에서 중요한 지역인 롱아일랜드의 몬토크란 곳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짐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의 관계에서 중요한 곳인데, 뭔가 벼랑끝 바다같은 막다른 느낌의 장소일듯, 언젠가 가보고 싶어졌다.
번역이 된 책이라, 주인공이 이질감을 느끼는 한국문화의 일부분인 유창한 한국어로 내레이션이 이루어지니 이중통역처럼 이상한 기분이다. 이민자의 역사와 뉴욕한인사회의 어두운 면은 좀 '교육'적이지만 흥미롭기도 하다. 주인공의 희미함을 강조하는 다른 인물들은 너무 스테레오타입들이고 주인공의 한국지식은 낡고 정형적이기도 한데, 작가가 삼십대 중반인게 나랑 벌써 세대차가 나는가보다. 나에겐 한국의 정체성이란건 도대체 뭔지, 너무 변화가 빠른건지 정의하기 불분명한데 오히려 교포들 사이에선 한국이란 개념이 부모들이 이민 올 당시 그대로이며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명확한 어떤 실체로 느끼는듯.
주인공은 감정없는 껍질만 남은 허물 같다가 자신과 가족을 파헤치게 되면서 처음으로 한번 사람처럼 울게 된다. 나는 누구 편일까, 묻는다.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건 자기에 관련된 모든걸 바라보는 것이다, 혼자인척 해도 뚝 떨어져나올수 있는것은 아니다. 처음엔 배트맨과 반대되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부모가 죽은 숨어사는 뉴욕의 고아라는것 등이 서로 닮았다. 표지 그림을 언니의 그림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건 책을 읽고나면 상당히 상징적으로 느껴지는데, 뭔가 가족비즈니스적이다. 하여간 재미있어서 몰입해서 읽었다.
pooroni @ 05/10/03 1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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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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