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2080157

오늘은 센터에 잠시 들렸다가, (일하는 척을 하고)
자 이제 연휴다!
퇴근하면서 도서관에 들려서 이것저것 복사하다가 태호오빨 만나서 홍석이랑 셋이 맥도널드에서 밥을 먹었다. 요즘 뒤늦게 학구열에 불타는 우리는 토론을 하다가 식지 않아서 자리를 옮겨 또 열심히 이야기했다. 매트릭스처럼 몇초만에 책 열권을 뗐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오며, 도움이 될만한 아티클을 복사한걸 흥분되어 읽었다. 상당히 도움이 될 내용이었다. 기분이 업되서 지하철에 앉아있는데도 아드레날린이 넘쳐났다. 갑자기 내 논문은 제쳐두고 머릿속에 남의 논문에 대한 새로운 가설이 막 생겨났다. 지하철을 내려서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해낸것에 오류 투성이라 풀이 죽었다.오늘 자료와 실마리를 짧은 시간안에 많이 찾아서 신이나서 방방 이야기하고도 싶지만 이런건 왠지 비밀작전처럼 조용히 해야하는 작업인듯 싶다. 요즘은 NERD 가 되었ㄷ.

집에 와서 한 십분동안 공부하다가 빌리지를 봤다.내가 좋아하는 애이드리언 브로디랑 호킨 피닉스가 나온다. 난 이 영화가 대박일꺼라고 생각했는데 미리 영화를 본 가족들은 다들 넘 재미없다고 했다. 엄마는 옆에서 같이 보다가 잠이 드셨다. 영화의 페이스가 느리긴 했고 맘에 드는 부분도 맘에 안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참 좋았다. 진행이 느린 영화를 꼽자면 시네큐브에서 봤던 아나타주아같은 영화도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빌리지는 초스피드였다.

자극이나 반전, 재미를 기대하지 않고 차분하게 보면 좋을 영화인데 악평이 많은걸 보면 사람들의 기대가 컸나보다. 빠른 추리소설이 있는가 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오래걸리는 소설도 있는 법인데, 영화도 가끔씩 느린 페이스인것도 좋지 않을까. 점진적으로 스토리와 마을,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개연성있게 발전되는것이 좋았고 모두들 연기가 섬세하고 멋졌다. 감독은 색상선택에 많은 비중을 두는것 같다. 빨간빛, 노란빛이 강렬하고 상징적으로 사용됬다. 제목 Village 의 뾰족한 V 모양이 인상깊었다. 요즘, 뾰족한 글씨들이 매력있게 다가온다. 결말을 생각해보면, 여주인공 할아버지의 재력덕분에 마을이 보호받고 있는 것이고 도망쳐나온 그곳 덕분이 이곳이 존재한다. 쿳시의 '포' 가 생각이 난다.

가만히 앉아서 한곳을 응시하는것은 힘든 일이다. 영상은 사람을 붙잡아둔 책임이 있기 때문에 다이나믹해야하고 더군다나 사람들은 영화를 엔터테인먼트로 여기기 때문에 더욱 영화는 한 방향으로 치우치게 된다. 첼시 갤러리들에 들르거나 PS1같은곳에 가면 두작품 건너 한 작품은 영상물이었던것 같다. 세기가 바뀌면서 매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중압감과 그래서 캔버스와 물성에 집착하는 이원적인 사조가 공존하는 시기였다. 그림을 캔버스에 그리던, 패널에 그리던, 물건이던, 무엇이던, surface 가 있는 매체를 캔버스라고 부르자. 캔버스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영상작품들이 대부분 싫었는데, 대부분 지루했고, 어두운 방에 프로젝션하는 환경도 싫었고 관람하러 들어갔을때 영상의 첫 부분부터 보지 못한다는게 싫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한다는 무언의 명령이 너무 짜증났다. 레이싱 비디오게임 영상 하나와 미니 극장에 Peep-Hole을 만들었던 작품 하나는 정말 기억에 남지만 나머지는 기억에서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이게 내가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지 않는 점이다.

멈춰있는것엔 닻처럼 시간을 고정시킬수가 있다. 제논이 쏘아올린 화살은 항상 멈춰있다고 했다는데 그림은 순간순간을 쪼개어 멈추게하고 영화는 화살처럼 지나가고 나는 붙잡을수가 없다. 하지만 느린 영화는 화살이 천천히 날아가서 순간순간 멈추는것처럼 느리게 조절할수도 있다. 중간중간 생각할 여지를 더 많이 준다.

호킨 피닉스는 가만보니 내가 본 영화중엔 항상 열정의 사나이지만 비정상적으로 과묵하고 비사회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흠, 그리고 저번에 TV 에서 the Cell 을 하길래 조금 다시 봤더니, 제니퍼 로페즈가 잠들때 TV 에서 판타스틱 플라넷을 하고있었다. 알고보니 데미안 허스트같은것 말고도 영화 전반에 판타스틱 플라넷과 관련된 알레고리가 많았다. 굉장히 하이아트의 레퍼런스가 많은 영화인데 하이아트가 제니퍼 로페즈와 동급으로 사용된것이 대중매체시대(아직도?)의 전형이다.


pooroni @ 05/02/08 02:45 | Permalink | →note - daily | Trackbacks |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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