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2140222
요즘은 논문준비를 하고 있다. 방학동안 입시기간 빼고 선생님과이 일주일에 한번씩 논문미팅을 하셨는데 갈때마다 주제가 바뀌고 준비도 안되고 그랬다. 겨우 주제의 방향을 잡은것같긴 한데 자꾸 난관에 부딪히기도 하고 내 무식에 슬퍼하기도 하고 집중력이 꾸준하지 못함을 나이탓에 돌리기도 한다. 어릴때의 정신은 스폰지같았는데 점점 머리가 빨랫비누처럼 변한다. 공부 방법이나 리서치방법도 체계적이지가 못해서 좌충우돌이다. 그 와중에 내가 희열을 느끼는건 독서카드 모으기인것 같다. 카드 사이즈별로 도서 요약이나 인용문을 주제별로 정리하는데 카드 끝에 매직으로 쭉 그어서 분류별로 색칠을 한다. 가끔씩 부채처럼 펼쳐보면서 얼굴에 부치기도 하면 꼭 카르멘의 부채같기도 하다. 하여튼 공부보다는 색칠하기와 무지개감상이 더 재미있는것 같다. 카드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몇 달 있으면 부채로 쓰기엔 너무 무거워질것 같다. 움베르토 에코는 '논문 잘쓰는 방법'에서 논문을 마치고 저 카드를 팔수도 있다고 그랬는데 야구카드도 아니고 저걸 어디다 파나. 나중에 공부한 기념으로 고이 모셔놓아야겠다.
디자인 논문들은 방법론 쪽으로 기우는 논문들이 많은 편이다. 방법론을 이론화시키려면 다른 전공을 빌려와서 체계화시켜야 하는데 그쪽에 치중하다 보면 작품이 약해지고 작품에 치중하다 보면 논리가 약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이 관건인것 같다.
검색하다가 프랑스어로 쓰여진 논문을 보았는데(읽진 못하고) 세상에 논문을 comic sans 체로 쓴 것이었다! comic sans 를 사용 금지시키자는 안티웹사이트가 활발한 판에 진지한 박사논문에 comic sans라니 깜짝 놀랐지만 막상 계속 보니 정감이 갔다. 항상 눈에 익숙해지면 좋아보이는 모양이다.
나중에 불문학과 논문 두편을 보았는데 같은 주제인데 굉장히 다른 접근방식이었다. 한편은 역사적이고 문학적인 관점이었고 하나는 좀 더 기호학적인 관점이었는데 두 편 다 도움이 많이 되었다. 자료 수집과 정리가 잘 되 있었고 참고자료 목록도 알차고 분석이나 체계도 정연했고 새로운 관점도 좋았다. 논문을 볼때도 책을 볼때도 목차와 맨 뒷장의 레퍼런스부터 보게된다. 하여튼 목적을 가졌을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독서법은 틀려진다. 우리는 처음에 논문 구상을 할때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큰 규모의 연구를 할 수 있을꺼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현실에 맞게 좁히고 체계화시키고 내가 궁금한것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남들도 사용할수 있게 만들고 잘 체계화시키고 자료수집을 잘 하는게 중요하다. 이게 간단한것 같은데 왜 이럽게 힘드냐 >.< 주제선정이나 관점이 내 학부전공인 서양화과적으로 자꾸 쏠리려고 하는데 서양화는 메타적이고 매크로한 비실질적인 입장이고, 디자인쪽 논문은 보편적으로 담론에 영향받지 않는 효용성에 기운다. 이 차이에 대한 내 입장은 무지->쇼크->반발->타협->수용 의 과정을 거쳐서나의 입장이란게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모든 입장에 '공감'하다보면 '의견'이란게 없어지고 목소리와 motivatoin 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공감을 하는 것인지, 냉철함을 잃은 것인지 그냥 피곤한 것인지...공감이 공존이 될수 있겠지? 열정이 노력이 빨랫비누처럼 닳아 없어지지 않고 무지개빛이길.
미국에 있는 친구가 내일 발렌타인데이라며 메신저에서 난리다. 나는 까먹고 있었다. 작년 이맘땐 초콜렛 만드느라 밤샜는데... 뭐, 이런게 1년의 차이이고 변화다. 내년엔 13일날 밤에 바뻐지도록 달님께 빌며 난 선생님이 내일아침으로 데드라인을 주시고 맞기신걸 번역하며 밤을 지새야지.
난 소설을 정말 좋아하는데, 요즘은 소설을 읽을수 없어 슬프다. 당분간은 논문을 향해 모든 독서행위가 한정될것이다. 아쉬운 와중 책을 들춰서 한대목씩만 읽기도 하는데 그러기에 좋은 책이 '적과 흑'같다. 챕터 앞머리마다 다른 텍스트의 발췌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지시문이 묘미다. 눈을 감고 페이지를 펼친다. 그러면 나타나는 내용이 포춘쿠키안에 들어있는 글귀같다, 자 오늘 나온것은 '나도 이젠 점잖아져야겠다, 지금이야말로 그럴 시기다. 돈 후앙-자, '젊잖게'가 오늘의 막심.
Ʈ ּ :
http://pooroni.com/zz/rserver.php?mode=tb&sl=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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