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010401



동생 졸업식이었다. 연대랑 이대랑 동시에 졸업식이 있어서 신촌일대가 무지 혼잡했다. 동생 졸업하는걸 보니까 자랑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했는데 너무 졸려서 축하를 제대로 못해줬다. 졸업가운을 입은 많은 사람들중엔 어려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나이드신 분들도 있었다. 졸업사진이란, 결혼사진, 돌사진처럼 인생의 분기점의 표시이며 나중에 보면서 이럴때가 있었지... 증명하고 회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동생과 사진을 찍으며 이런생각을 하니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것 같았다. 멀리있는 아빠는 우리와 함께 졸업식장엔 없으셨지만 옆에없어도 옆에계신것 같았다. 동생은 꽃다발을 너무 많이 받아서 굉장히 처치곤란... 졸업식장의 많은 꽃들이랑 무스 머리같이 부풀린 꽃포장들이 아까웠다. 우리나라의 꽃포장은 대부분 화려하고 볼륨있어보이는데 목적을 둔다. 꽃은 그 자체로 이쁜데 무서운 포장에 파묻혀서 꽃이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도 안보인다. 아니 도대체 왜 노란 프리지어에 연보라색 그물을 부풀리고 장미포장에 진주를 붙여놓는거야.

우리 문화엔 키치인것, 키치를 비웃는것 딱 두가지가 있고 그 중간의 완충지가 있을까? 하여간 꽃다발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꽃, 아름다움, 장식, 축하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를 응축한 기호다. (High End 꽃가게를 말하는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꽃가게, 노점상을 말하는 것이다, 호텔의 꽃꽃이와 졸업식장의 꽃은 너무 다르다. 보헤미안적인 꽃은 호텔의 꽃과 반대다. 하지만 호텔과 보히미언은 서로 모방을 한다. 졸업식장은 호텔을 모방하고 보히미언은 졸업식장을 조금씩 모방한다. 굳이 모더니즘과 그 이후를 분리하자면 모더니즘에선 호텔과 보히미언이 더 친하고 그 이후엔 보히미언과 졸업식장이 더 친하면서 속으론 정 반대의 생각을 하는게 아닐까. 그냥 보히미언의 용어를 바꿔사용해버릴수도 있다. 동시에 같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다른시간에 같은형태로 나타날수는 있다. 모방의 근원보다는 모방의 속도가 더 중요하다.) 사람들의 무척이나 들뜬 분위기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업되었는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 기자였다. 내 번호는 어떻게 안거야 -_-;;; 당황해서 어리버리 이상한소리를 하고 말아서 기분이 계속 찜찜하다.

신촌엔 사람이 많아서 홍대쪽으로 오랫만에 가서 밥먹고 차마시고 했다. 전화통화 이후로 기분이 쭉 요상하다. 백만년만에 백화점가서 샴푸랑 화장품을 사고 무지에 가서 새학기를 위한 노트를 샀다.

집에 와서 얼굴에 새로 산 크림을 바르고 잤다가 못일어날뻔 했는데 다행히 일어났다. 잠이 모자라서 눈이 계속 감긴다. 얼굴에 뭘 바르던 안바르던 상태는 같다. 자폐적이기도 한 리추얼이지만, 하루 일과중에서 리추얼들을 빼면 별반 남는게 없다.

하루종일, 누군가에 대한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자, 일할시간.


pooroni @ 05/03/01 04:01 | Permalink | →note - daily | (1) Trackbacks |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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