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 요즘은 이미지로 모든 것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전시장이 차별화시켜야 하는 것은 사물을 뭔가 다른 경로로 경험할할수 있게 만드는 체험방법이지 작품을 모아 나열하는 방식은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뮤지움의 개념은 'a box of wonders', 진기한 것을 모아놓은 상자라는 개념의 독어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전시개념의 기원은 진기한 컬렉션을 보여주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했지만 현대에는 이 개념이 변할수밖에 없다, 전시는 스펙터클한 엔터테인먼트에 경쟁할수 없기 때문이다. 최대한 전시물을 통해 전에 보지 못했던 관점을 체험할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푸생~'은 악평이 많아서 큰 기대는 없었다. 작년에 한창 나폴레옹에 관심이 많을때 다비드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혁명의 도가니인 프랑스 안에서 화가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유지시키고 작품을 전개해나갔는지가 흥미로운 화가인데다, 신고전주의 화가중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 '마라의 죽음'은 이례적이고 대담하고 충격적인 그림이다. 마라는 몸에 피부병이 있어서 소용돌이 와중에도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항상 욕탕에 들어가있었다고 한다. 다비드의 작품은 실제로 처음 보는것이었는데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고 인쇄물에서 보지 못한 디테일들이 보였다. 특히 칼로 찔린 부분을 본 것이 처음인데 피의 색이 주황빛인것이 기이했다, 염료가 바랜 것일까? 전시를 돌다 보면 여러 그림들에 '피'의 묘사가 굉장히 많고 다양한 것을 알 수 있다. 바로크 그림 중 멧돼지를 사냥한 그림이 하나 있는데 멧돼지 입에서 떨어진 피가 침에 섞인것같은 Wash 같은 농담인데 알리자린 크림슨같은 청색 나는 붉은빛이다. 피는 시간이 지나면서 철분때문에 누런끼 나는 색으로 변하지만 산화되기 전에는 푸른빛이 돈다, 그 색깔때문에 '사냥' 그림은 죽음 바로 직후를 붙잡아 놓은 immediacy'가 느껴졌고 무서웠다.


                         (자끄루이다비드의 마라의 얼굴 연구 스케치)

하여튼 다비드의 그림으로 다시 가자면, 여백의 사용과 구도의 대담함, 이는 인쇄에서도 보이지만 실제로 보니 더 놀라왔다. 인쇄에서 보지 못했던건 붓놀림의 텍스추어였는데 텍스추어의 배리에이션이 뛰어나서 그림 구성을 너무나 탄탄하게 만들었다. 선-을 지향하는 형태주의 신고전주의파 답게 아스러져가는 러프한 여백의 brushstroke과 달리 형체들은 단단하게 짜여져서, 여백을 모아 빚듯 만들어진다. 마라가 죽은 얼굴을 고개를 기울이고 보면 굉장히 일그러지고 비대칭적이다, 그런데 그냥 보았을땐 똑바르게 보인다. 마라 앞의 대리석같은 큰 상자모양은 몰랐는데 굉장히 옅은 wash로 투명했다. 텍스추어의 배리에이션 뿐 아니라 농담의 베이에이션도 과거에 흔히 볼 수 없었던 테크닉이다. 마라는 죽으면서 편지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읽을수가 없었다 ㅠㅠ. 크기와 색이 비슷한 깃털펜과 나이프. 연극적인 분위기. 끊임없이 이야기할수 있는 그림이다.

전시를 통틀어 볼때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전시의 부제라 볼 수 있는 '선에서 색으로' 라는 서양미술사의 두 가지 획, 그리고 그것의 합인 근현대 미술로의 트랜지션을 보여주기엔 역부족이다. 그런 점들을 명확히 보여줄수 있는 대표작들이 없었다. 들라크루아는 좋지않은 딱 한점만 있었고 고갱의 사과그림은 오히려 세잔그림처럼 보이고(세잔이 선이라면 고갱은 색이다) 색에서 중요한 보나르의 작품 한점엔 보나르의 특징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이 일반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그림을 '실제로' 보고싶다는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복제가 만연한 시대에서 '실물'엔 다른 아우라가 있을것이란 기대, 스타를 직접 보고싶어하는 기대같은 것 말이다. 경험적으로 봤을때 그림에 아우라는 존재한다. 책에서만 보았을때 대학교 3학년때 까지만 해도 나는 르느와르를 너무너무 싫어했다, 너무 심하게 부드럽고 낭만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의도적으로 뒤틀어 사용하는게 아닌 한 현대화가들이 가장 기피하는 특징이다. 하지만 어떤 박물관에서 르느와르 작품들을 무더기로 보고, 르느와르의 색 사용을 보고, 전체의 느낌과 다른 해체적인 반항심을 처음 느끼고 르느와르의 복잡성을 너무나 좋아하게 됬다. 나는 반 정도는 대중이고 미술전공을 했으니 반 정도는 공급자인 다른 입장을 함께 가졌다고도 할 수 있을것 같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추상적인 엔터테인먼트에 더불어 관람을 통해 뭔가 현실적으로 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겐 작품들이 교과서적이지 않은것은 정말 즐거웠다, 이런 초기작품, 소품, 전환기작품들은 화가 개인에게 브랜드를 부여하듯 대표작과 대표 화풍으로 구분되는 스테레오타입을 불식시키고 화가의 작품세계와 미술사를 더 풍부하게 이해할수 있는 시각을 준다. 그림은 랭스미술관 소장작품들이 대부분인데 랭스미술관같은데 가볼일이 없으니 좋은 기회다, 루브르나 메트로폴리탄에 가볼 사람은 많을것 아닌가.

이번 전시의 가장 큰 감동은 고갱이었다. 사실 후기인상파, 고호 빼고 고갱, 세잔 그리고 나비파의 보나르 이어지는 마티스 등은 지금까지 유효하고 멋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화가들이다. 고갱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 달과 육펜스에 비쳐지는 고호보다 더 싸이코틱하고 조용한 프랑스인의 성격, 타히티의 유명한 작품들... 타히티 이전의 작품들은 Sermon 그림 말고는 아무래도 덜 유명하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고갱의 '브르타뉴 지방의 건초말리기'를 보고 심금이 떨려 울뻔했다. 너무너무 아름다왔다. 그리고 판화와 드로잉들, 그래픽적이고 멋졌다, 일본 영향도 크게 보이지만 '아... 이사람은 천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 내가 넘을수 없는 어떤 장벽, 질투를 넘어서서 대자연의 경이감같은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머지도 좋은 그림, 흥미로운 그림들이 많았다. 스키로스의 아킬레우스, 여자로 분장한 아킬레우스가 칼을 뽑는 주제는 흔하지만 여성성에서 발현되는 남성성이라는것이 볼때마다 흥미롭다. 동정녀 마리아를 그리는 성 루가, 이그림은 초현실주의보다 더 초현실적이고 이상하다. 구름에 앉아있는 마리아를 그리고 있는 루가라니... 뭘까. 시몽 부에의 성모승천이란 그림도 있었다, 이 그림의 천사들은 머리만 있고 머리에 날개가 달려서 날아다닌다. 게다가 사람들 눈이 다 까뒤집혀졌는데 정말 기괴하고 이상한 그림이다. 전시를 보다보면, 특히 종교화엔 눈이 뒤집히려는 사람(여자)들이 많다, 오르가슴을 느끼는것 같은, 중세에서 베르니니로 바로크로 이어지는 전통일까.

그림위에 황금색으로 쓴 글씨들, 레터링의 정확도, 그림과 글의 관계도 흥미뤄웠다. 그밖에 파네스트의 검투사-대담함과 희안한 포즈, 그래픽한 베르텔르미의 소크라테스, 조르쥐 미셸의 파리 근교의 전경의 거의 추상적이고 보기힘든 모노톤 색조의 하늘, 코로의 분수대와 시냇물의 아름다운 구도와 표현, 형태의 마법사같다, 라투르의 decadent하고 흩어지는 형태, 도비니의 프러시안빛 하늘의 멋진 하늘과 큰 붓터치의 올리브그린 전경의 묘한 조화, 마이욜의 처음 보는 그림등을 재미있게 보았다. 쿠르베가 그린 초상은 여기서 처음 봤는데 역시 쿠르베는 인물화에 소질이 없는것 같다. 뒤피의 그림 조명만 왜 푸르스름한 형광등색 조명인지, 그림도 푸른빛인데 조명색때문에 그림색이 아름답지 않게 보였다.

그림들을 보면서 주의깊게 본 다른 점은 그림훼손인데 마지막 그림이었던 들로네의 그림을 보면 흰색부분, 흰색을 섞은 부분들이 심각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무슨 흰색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름 함량이 적은것을 윗부분에 많이 덧칠한것으로 보인다. 그림의 보존성에 관한 문제가 현대그림에 있어 가장 간과되는 부분이 아닐까.

전시를 보다보면 흙빛의 칙칙한 그림들이 뒤로 갈수록 밝아진다. 맨 처음에 보게되는 푸생의 그림도 배경은 날씨가 꾸무룩해 보이는 전원풍경이지만 배치된 인물들은 스튜디오에서 인위적인 빛을 가해 그린 바로크전통의 느낌으로, 다른 공간에서 오려다 붙인것처럼 보인다. 바로크시대 그림의 특징은 다 더러워보인다는 것이다. 그림들이 탈색되기도 했겠지만, 유화의 전통은 먼저 기름이 가장 조금 들어있는 earth color들로 밑그림을 그린다음에 색을 많이 쓰지않고 소묘하듯 형태를 빛는것이다. 빛이 있다는 개념이 아니고 땅같은 색으로 소묘된 그림 위에 빨강이나 녹색을 덧칠한다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들라크루아등이 나오고 인상주의가 시작되며 회화엔 빛이 생긴다. 인상파를 보면 그림이 흰색일색이다. 후기인상주의로 가면서 빛(흰색)이 색과 면으로 바뀐다. 사실 전시배치에 신경을 좀 더 썼으면 이런 구분을 충분히 보여줄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런 그림들을 한꺼번에 볼수 있는것은 즐겁다, 그림이 너무 많아서 집중하기 힘들긴 했다. 그림 보는건 힘든일이다;;; 한가지, 전시벽이 마음에 안들었다. 진한 녹색, 진한 머룬색, 그림들과 어울리고 그림들을 비싸보이게 만드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연대의 그림들을 순차적으로 비교하며 볼 때, 객관적인 흰 벽이 더 좋다. 선->색 으로의 전환과 함께 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주제와 구도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사건/시간의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그림들이고 현대에 가까워지면서 '장소/시간의 체험' 이 '현상/시간의 체험' 으로 바뀌면서 '감각/현현epiphany의 체험'으로 바뀌고 '사고/계기의 체험'으로 바뀌어나간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것은 시대가 바뀌면서 바뀌어가는 그림의 프레임이다. 황금색과 대리석의 휘황찬란함에서 간소함으로 바뀌어나가는 차이, 금빛 프레임위의 레터링, 프레임의 문양과 engraving 등이 정말 흥미롭다. 언제 기회가 있으면 프레임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다. 동양의 두루마리식, 순차적이고 연속적인 감상법과 서양의 분리되고 갖힌 '세계'의 계념. 동양의 그림속의 귀신과 해리포터 그림안의 유령. 프레임은 전시공간과 그림속의 '공간'의 분리를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벽의 색까지 다채롭게 만들지 않아도 됬을꺼라는 생각은 프레임들이 강한 그림들이었기 때문이다. 빛이 어두운데다 배경이 어두웁고 색깔이 있어서 그림속의 색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전시보고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를 오랫만에 찾아가서 이야기했다. 참, 우린 왜일케 아둥바둥 사는지 모르겠다. 친구를 보고 친구를 너무 좋아한다는걸 새삼 깨달았다. 젤 친한 친구인데 학교 입학하고 다섯번 이상을 못봤다. 그리고 전시를 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것중 하나가 전시보는것이란것도 새삼 깨닫고왔다. 전시를 보러가면 뭔가 대단한 것을 보겠다는 기대를 항상 하게되는것 같다. 동물원의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는' 관점보다는, 전시 성격에 따라 시대/역사적 맥락으로 시각적인 표현을 통해 사람들의 사고와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면 전시가 좀 더 재미있어 지는듯하다. 예를 들어 극동지방 초상화들을 보면 사람들이 모두 긴 손톱을 가졌다, 그런데 서양화를 보면 사람들 손톱이 모두 짧다. 이런 비교가 그림 감상의 묘미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