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140343



2003...2003년에 내가 뭘 했더라? 그 해에 무르익은 포도들로 빚은 술이네, 2003년 샤블리라고 써있다. 동생이 와인시음회 통역하고 가져온 것인가보다. 홍차 끓이려고 부엌에 가니 놓여있어 마셔봤다. 와인맛은 잘 모르지만 속이 답답하고 입이 심심할때 마시니 찌릿하고 맛있네. 조갯살 든 파스타랑 석류를 함께 먹고싶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리차를 한입 마셨다. 보리차는 달달해서 입 안의 맛이 너무 많아졌다. 홍차도 함께 타왔다. 와인을 마시고 엄마와 한마디 하고 다시 나가고 하는 사이에 홍차는 까만 물이 되어버렸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것 같을때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여러가지 종류의 액체들을 만들고 마셔본다. 내 앞의 문제가 액체와 섞여서 뭔가 결합을 통해 다른 물질/문제로 전환될 것만같다.

문제는 내 컴퓨터가 맛이 간 것이다.

그저께부터 윈도우를 다시 깔려고 백업을 받는데 계속 다운이 되서 오늘 새벽에서야 백업을 다 받았다. 그 와중에 파일도 다 손상된 것 같고 계속 다운이 되가며 윈도우를 다시 깔았는데 계속 다운이 되는걸 보니 하드웨어에 문제가 있는것 같다. 할것이 많은데 데드라인도 다 넘기고 머리는 아파서 너무 속상하다.

너무 답답해서 저녁엔 잠깐 나가서 며칠전에 본 말벌둥지 사진을 찍었다. 가까이에 가서 찍고 싶었는데 열라 큰 말벌들이 붕붕 날아다녀서 멀리서 찍었다. 저 집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 밖에서만 봐도 말벌 둥지는 정말 오묘하게 생겼다. 재능있는 조각가가 페트라같은 곳의 장미암석을 오묘하게 깎아낸다 해도 저런 모양은 만들수 없을꺼다. 저 말벌둥지, 정말 궁금하다. 다음엔 좀 더 무장을 한 차림으로 가서 말벌둥지를 찍어보야야겠다. 사진을 본 엄마는 말벌둥지랑 요크셔인 우리 강아지랑 닮았다고 했다.

아빠 노트북을 빌려왔다. 노트북이라 잘 보이지 않고 불편하다. 동생 컴퓨터까지 지금 망가졌다. 네 시가 넘었으니 이른 차 타고 빨리 학교에 가서 일을 해야겠다. 어제도 그냥 학교에 가서 할껄 괜히 삽질했다 정말. 하여튼 할 일을 하나도 못해서 죄책감에 온 몸이 빠샤질것 같다. 말벌도 저렇게 부지런하고 멋지게 살아가는데진것을 말벌보다 몸도 큰 내가 절망하면 되겠냐. 절망과 희망은 정말 생각하기 나름으로 몸의 크기에 비례할수도 있지.

그래도 우울한 와중 건진것이 있다면 '검은 태양'을 반 정도 읽은 것이다. 컴퓨터를 모니터링하며 앉아서 너무 속상하니까 무엇이든 읽을 수 있을것만 같았다. 이 책의 부제는 '우울증과 멜랑콜리'이다. 어려워서 포기했던 검은 태양을 읽기 시작했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까 재미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책 대신 노트북을 가져다놓고 작업을 했어야 할것을. 나는 불운에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는다는 핑계로 일을 안하고 계속 책을 본것이다. 죄책감 X 2. 책을 읽으니 내 블로그가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에 임상케이스로 유용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간 들었던 이상한 기분은 지하철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면서 몰래 그리는것을 발견했을 때와 비슷할것 같았다. 지하철에 탄 미지의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내 앞에서 자고있는 흥미로운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것은 어려운 일이고 흥미로운걸 그리지 않기는 아깝다.


pooroni @ 05/07/14 03:44 | Permalink | →note - daily | Trackbacks | (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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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딜레마군요. 흠. 그래도 왠지 누군가 자기를 흘끔흘끔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듯 합니다. 마치 몰래카메라를 당하는듯한 그런 느낌일 거 같네요.
NairrtiԲ 05/07/14 10:01 ۼ.

몸이 크면 절망도 희망도 클 수 있으니,
여기에서도 다이어트에 대한 필요조건이 발생하는군요! ㅋ
lyleenԲ 05/07/14 11:33 ۼ.

조개살 파스타랑 텁텁한 붉은 와인!!
한가지에만 꼿혀있음 위로란 걸 모르게 되자나,
mjԲ 05/07/14 22:03 ۼ.

Nairrti//맞아요... 그래두 누가 나를 찍는것보단 그리는 것이 기분이 덜 나쁠까요? 반대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죠?
lyleen// ㅋㅋ 절망희망이 작은것보다 화끈하게 큼지막한게 좋을지두 모른다는 생각두 들어요.
mj//움. 난 원래 조갯살 싫어하는데 저 와인맛이 약간 조개맛같았어. 조갯살과 빨간 와인 함께 마시면 입 가장자리에 피처럼 흘리면서 살을 와작와작 씹을래.
pooroniԲ 05/07/15 03:55 ۼ.

I just don't have much to say these days. My mind is like a fog. Shrug.
girls pissingԲ 07/03/03 10:21 ۼ.

My life's been completely unremarkable these days. I just don't have anything to say. Shrug. Oh well. I've just been sitting around not getting anything done. I haven't gotten anything done these days.
cipro onlineԲ 07/04/11 02:50 ۼ.

I haven't gotten anything done these days. More or less nothing notable going on lately, but that's how it is. What can I say? I guess it doesn't bother me. Shrug. Maybe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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