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250017






달빛에 생긴 내 그림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왔다. 탄천이 고층 아파트들의 불빛이 우주처럼 영롱하게 비쳐서 별들이 가득한 용궁같았다. 그림자는 이티에 나오는 그 그림자같기도 했고 나보다 더 나 같기도 했다. 그림자를 쳐다보며 척 팔라닉의 어떤 소설 도입부가 가물가물하게 생각이 났다. 도입부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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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 남자는 다른 나라에서 왔고 곧 돌아가야 했지. 엄마가 말한다. ...
엄마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애인과 함께하는 마지막 밤, 소녀는 램프를 가지고 나와 벽에다 그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소녀는 애인의 그림자를 벽에 그려 넣었다. 그가 떠난 뒤에도 그의 모습, 바로 이 순간, 그들이 함께한 마지막 순간의 증거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 다음 날, 애인은 떠났지만 그의 그림자는 그대로 남아 있었단다.
아주 잠깐 아이는 고개를 돌려, 엄마가 암벽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 윤곽을 페인트로 칠하고 있는 것을 바라본다. 아이는 꽤 떨어져 있어서 그림자는 엄마 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크다. 아이의 말라 빠진 두 팔은 큼직해 보인다. 땅딸막한 다리도 늘씬하게 뻗어 있다. 가냘픈 어깨도 넓게 벌여져 있다. 엄마가 말한다.
보지 말라니까. 꼼짝하지 마. 움직이면 다 망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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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부분을 읽었을 때가 2003년 이른 봄이었고 홍대 앞 스타벅스에서 일요일 아침 10시쯤 난 누굴 기다리며 저 부분에 줄을 긋고 있었다. 기억이 정말 선명하네, 내가 뭘 마셨는지, 까지 생각난다. 그리고 줄을 그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12시쯤 되서 비하인드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2003년엔 항상 비하인드에서 점심을 먹고 아티누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라리에또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비하인드에서 백만송이 장미를 그리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 저곳들에 그만 가기 시작하고 비하인드와 아티누스는 없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 소설속 이야기만 같다.


pooroni @ 09/11/24 23:18 | Permalink | →note | Trackbacks |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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