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30401



주말에 한국해양연구원에 가서 설치를 하고 왔다.

시간이 너무 없어서 출력집 아저씨께 스워치를 보내드리고
MDF판에 '도색'을 해서 퀵으로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아저씨가 잘못 들으시고 페인트를 '조색'만 해서
통채 보내주셨다. 이런 일 때문에 통화 품질이 중요하구나.

그래서 새벽에 우울하게 12제곱미터를 아파트 벽에 기대놓고 수위아저씨 몰래 칠해서 가져가야 했지만... 나머지 일들은 문제가 많았음에도 여러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다 해결되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정말 새벽에 페인트 칠한 부분만 제일 기억에 남는다.

어렸을때 '톰소여의 모험'에서 톰이 페인트칠을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페인트칠이 정말 재미있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톰이 느꼈듯 페인트칠은 정말 재미없는 일 중 하나인것 같다. 칠할 면적은 많고 한번에 깨끗하게 칠해지지 않고, 몇번이고 칠해야하고, 롤러와 붓에 묻은 페인트는 점점 뻑뻑해지고 페인트통 입구는 점점 덩어리지고 모든게 점점 지저분해지는데 이건 뭘 어떻게 깨끗하게 정리할수도 없다.

적당한 공간과 적당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표면이 점점 일정한 색으로 물들면서 부드러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뿌듯함을 느껴보기도 할테지만 시간이 없어서 초조할땐 컬러피커로 찍 눌러서 색이 당장 바뀌지 않는 이 과정은 짜증난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평상시보다 좀 더 든 그만큼 더 설치할때 저 표면이 그냥 가상의 벽이나 가상의 종이가 아니고 정말 피부같은 표면으로 느껴졌고, 아직도 벽의 색과 냄새, 감촉, 튀어나온 부분, 페인트가 뭉친 부분 등이 손 끝에 생생하다. 아무튼 작업과정은 그렇지 않더라도 최종결과물은 물리적이 되니까, 이 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커넥션을 잃지 않고, 과정으로 끌어들이는것은 나에게 중요하구나... 라는걸 새삼 느꼈다. 저번에 어떤 선생님이 김연아 경기를 보면서, 형이하학적인 움직임이 형이상학으로 치환되는 그런 느낌이라고 했는데, 뭐 그게 어떤 뜻이던 간에, 나는 페인트칠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pooroni @ 10/03/03 03:24 | Permalink | →note - daily | Trackbacks | (2) Comments

Ʈ ּ :
http://pooroni.com/zz/rserver.php?mode=tb&sl=766

Comments
ㅎㅎ 푸로니님
그림을 그릴때도 그렇고 글을 쓸때도 그렇고 뭔가 감정이입이되면 그런 치유의 느낌?을 받았던것 같아요.~
항상 건승:
강구룡Բ 10/03/15 13:51 ۼ.

맞아요... 그럴때 기분 좋아요~ 구룡씨 잘 지내요? 점점 얼굴보기두 힘들다 그죠~ 언제 시간 내봐요~
pooroniԲ 10/03/20 01:16 ۼ.

̸ ::          й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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