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170228



어제밤엔 소영언니가 빌려준 천사와악마를 일고 아침되서 잠이들었다. 그래서 오늘 또 지각을 하고 말았다. 학교에 가있어야 할 시간에 잠을 깻다. 엄마한테 아침 일곱시에 깨워달라고 했는데 세시간을 깨워도 안일어난다더라. 엄마가 일어나라니까 내가 잠꼬대로 '안돼 이안에 거울있어'라고 말했다고한다. 오늘 선생님이랑 점심 먹기로 했었는데 너무 늦어서 소영언니가 그냥 밥을 먹고오라고 했다. 나는 옳다거니, 커피빈에 가서 커피를 마시러 갔다. 갔더니 내가 대학교 다닐때 가장 좋아했던 야채 베이글이 있는것이었다. 우리학교 기숙사식당 메트의 야채 베이글은 환상적으로 맛있었다. 약간 스폰지스러운 맛이 나며 당근이 송송박힌 우리학교 베이글은 다른곳의 베이글과 살짝 달랐다. 베이글의 본고장은 뉴욕이라 하며, 우리나라의 밥처럼 아침식사로 베이글을 잘 먹기때문에 그곳의 사람들은 베이글에 대한 입맛이 아주 날카롭다. 뉴욕에 잠깐 살땐 맛있다는 베이글도 많이 먹어봤지만 우리학교 베이글에 견줄수 없었다. 게다가 야채베이글은 잘 없다.

나는 과일종류가 들어간 베이글이 제일 싫고, 씨가 들어간 베이글도 싫다. 양파가 들어간 베이글도 싫고, 그냥 플레인 아니면 야채가 좋다. 예전엔 아침에 친구랑 아니면 혼자서 책보면서 오전에 커피 한잔에 베이글을 토스트해달라고 하면 크림치즈를 잔뜩 발라서 주는 까페에서 한가롭게 앉아있는게 너무 좋았다. 겨울엔 커피대신에 스팀한 우유에 아몬드시럽을 타달라고 한다. 하여튼 커피냄새를 맡으면 이런저런 캡숑 많은 추억에 젖어들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차를 시키려 커비빈 카운터에 갔는데 갑자기 야채베이글이 눈앞에 보였다. 신이나서 베이글을 토스트해달라고 하고 잡지까지 다 가져와서 자릴잡고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바르려는 순간 소영언니가 전화를 해서 빨리 호암으로 오라고 해서 안타까와하며 베이글을 포장해서 빨리 학교에 갔다.

우리나라에 있는 베이글들은 탄력이 너무 많고 흐물거린다. 맛있는 베이글은 좀 더 딱딱하고 밀도높은 해면같아야한다. 베이글이 이스라엘에서 온 빵인만큼 말랑말랑한 롤이나 파삭파삭한 프랑스빵의 느낌이 아니고 아니라 중동의 걸레빵같고 포카챠같은 지중해쪽의 투박한 느낌의 고체물질 같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베이글은 다른 빵들과 섞어만든 느낌이다. 이 베이글도 역시 너무 말랑말랑했다. 하지만 말랑하다고 맛이없는것은 아니고, 그냥 내가 기대하고 상상하고 있던것과 맛이 다를땐 좀 실망하는 감정이 생겨난다. 외국에서 한국음식점 갔을때 한국을 한꺼번에 확 느끼고 싶은데 뭔가 달라서 불만스러운 그런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이렇게 베이글이 많지가 않았다. 그래서 방학때 한국에 오면 집에서 효모로 반죽을 발효시키고 그걸 삶고 구워서 베이글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는데-직접 만든 베이글은 맛없었다. 요즘엔 한국에 외국에 살때 보던 상표, 음식, 음료들이 갑자기 다 들어와있다. 같은 물건, 음식들이 들어왔다 해서 내가 더 행복하지도 않고 생활의 질이 상승된것도 아니지만 익숙하기때문에 자주 찾는다. 그러다보면 저질스런 외국생활의 시뮬라크르처럼 느껴지는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많아져 모든게 더 민주적이 된것도 아니다. 많은게 생긴만큼 많은게 없어진다. 하지만 그 밖의 것들에 나는 또 익숙하지 못하다. 집에서 김치에 쌀밥을 먹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갔더니 다들 밥먹기를 마치고 수정과를 들고 있었다. 갈비랑 장어, 회같은걸 먹었다고 한다. 참 맛있었는지 다들 표정이 밝았다. 난 늦게가서 죄스러웠기때문에 그냥 나중에 베이글을 먹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정말 잘 안된다. 일러스트를 잘 못쓰기도 하고 로고의 문제풀이 프로세스는 뭔가 나랑 핀트가 엇갈린다.

오늘 내 생애 첫 명함이 나왔다. 그런데 이사람들, 수정본이 아니고 잘못보낸 파일로 명함을 찍어왔다. 내껏만이 아니고 미리씨것까지 로고가 뭉개지게 나와서 참 뭐하다. 공짜라서 다시만들어달라고 하기도 미안하다. 그래도 신이나서 사람들한테 명함을 두개씩 주고 그랬다. 집에 와서 동생과 엄마한테도 명함 한장씩 줬다.

저녁먹으려고 식당번호를 찾는데 번호가 없어졌다. 이리저리 꾸물거리다가 그냥 시키지 않고 나가먹기로 했다. 낙성대까지 태호오빠, 나, 홍석이 세명이 한 스쿠터위에 다 타고갔는데 굉장히 춥고 불편했지만 재미있었다. 하지만 내리막길을 가는데 점점 뒤의 두명이 밑으로 쏠리기 시작해서 태호오빠는 점심때 먹은 갈비의 힘으로 간신히 버텼다. 치마입은 나는 옆으로 앉아서 점점 옆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하다가 발이 바퀴있는데 껴서 바퀴에 발이 감긴채 옆으로 미끄러져내릴까봐 무서웠다. 바람이 차니까 손이 얼어서 떨어질것 같았다.

집에와서 엄마랑 쓰레기버리러 나갔다가 마실걸 사려고 가게에 갔다. 가게에 가니 문을 닫아서 편의점으로 갔다. 택지개발이 한창인 우리 동네, 엄마가 새 길을 발견했다고 해서 가로등도 켜지지 않은 컴컴한 길을 탐험해봤다. 옆에 탄천이 흐르고 나무숲이 있고 왠지 밤중에 로맨틱했다. 엄마랑 새로 미 대사로 부임한다는 중앙일보 사장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갑자기 소릴질러서 하늘을 보니 별이 너무나 많이 반짝이는 것이었다. 엄마가 '저기봐 W자다!' 라고 했다. 유명한 별자린것 같았는데 뭔지 기억할수 없었다. 그러다가 화성 살인이 생각나서 빨리 요구르트를 사서 맨날 오던 무섭지 않은 길로 집에 왔다.

조금아까 홍차를 타먹었다. 어릴땐 차를 참 싫어했는데 요샌 설탕도 우유도 넣지 않은 홍차도 맛있다. 홍차마시고 나면 입안에 밤털난것같은 텁텁한 느낌이 난다.

엄마가 열심히 키우는 체리세이지에 뿐홍 꽃봉오리들이 맺혔다. 너무 이쁜데, 사람만큼 시공간을 혼동하는건 요즘엔 식물들도 마찬가진가보다.

양선생님이 오늘 빨간부츠 이야기를 해주셨다.


pooroni @ 04/12/17 03:18 | Permalink | →note - daily | Trackbacks |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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